📌 전환기의 생산성 경제학
— 에너지 이후 시대, 성장의 조건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1. 왜 지금 ‘생산성’이 다시 중요한가
21세기 초반까지 경제성장은 비교적 단순한 공식을 따랐다.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노동, 더 많은 자본 투입이 곧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이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은 불안정해졌고, 노동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환경 부담과 기술 전환이라는 이중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생산성 체계 자체의 전환기’**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성장은 투입의 증가가 아니라 구조의 효율성과 시스템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2. 전통적 생산성 개념의 한계
기존 경제학에서 생산성은 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 노동 1시간당 산출량
- 자본 대비 산출 비율
- 총요소생산성(TFP)
하지만 이 지표들은 오늘날의 경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첫째, 디지털·플랫폼 경제에서는 산출이 측정되지 않는다.
무료 서비스,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는 GDP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둘째, 환경 비용이 생산성 계산에서 배제된다.
단기적으로 효율적인 생산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구조가 반복된다.
셋째, 불확실성과 리스크 관리 능력은 수치화되지 않는다.
팬데믹, 에너지 위기, 공급망 붕괴는 생산량이 아닌 ‘복원력’이 경제의 핵심임을 보여주었다.
3. 전환기의 핵심: 에너지 이후 경제
에너지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초다.
산업혁명 이후 성장은 항상 에너지 소비 증가와 비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화석연료 의존도 감소
-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
-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
- 탄소 규제와 ESG 기준 강화
이제 국가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관리하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이 변화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 대량 생산 | 고효율·고부가가치 |
| 저비용 에너지 | 안정적 에너지 |
| 단기 성장 | 지속 가능성 |
| 중앙 집중 | 분산형 시스템 |
4. 생산성의 재정의: 속도보다 회복력
전환기의 생산성은 속도가 아니라 회복력(resilience) 이다.
✔ 위기 발생 시 얼마나 빠르게 복구되는가
✔ 공급망이 끊겨도 대체 경로가 존재하는가
✔ 기술·인력·자본이 유연하게 이동 가능한가
이제 생산성은 단일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설계 문제가 되었다.
특히 다음 요소들이 핵심이다.
- 디지털 인프라의 유연성
- 산업 간 전환 가능성
- 노동자의 재교육 구조
- 에너지 자립도
- 정책의 예측 가능성
5. 국가와 시장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과거에는 시장이 효율을, 국가는 보완을 담당했다.
그러나 전환기 경제에서는 이 구도가 뒤집힌다.
국가의 역할
- 에너지·산업 전환의 방향 제시
- 리스크가 큰 영역의 초기 투자
- 인프라 구축 및 제도 설계
시장의 역할
- 기술 혁신
- 자원 배분의 미세 조정
- 소비자 선택의 반영
즉, 국가는 설계자, 시장은 실행자로 기능이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손을 떼면 시장은 불안정해지고,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혁신이 위축된다.
따라서 균형 설계가 생산성의 핵심 조건이 된다.
6. 전환기의 생산성이 의미하는 것
오늘날의 생산성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가 아니다.
✔ 얼마나 적은 자원으로
✔ 얼마나 안정적으로
✔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가 새로운 기준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 재생에너지
- AI 자동화
- 공급망 재편
- 지역 분산형 경제
는 모두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적 선택이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산업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경제 질서 전반을 재구성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이는 기존 성장 모델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도록 요구한다. 산업화 이후 경제 성장은 값싼 에너지, 대량 생산, 규모의 경제를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러한 성장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경제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비용과 편익이 발생하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받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전통 경제학에서 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의 효율적 결합을 통해 산출을 극대화하는 개념이었다. 이때 자연은 무한한 투입 요소로 간주했고, 환경 오염이나 탄소 배출은 외부효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이러한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탄소 배출은 단순한 외부효과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생산성의 개념 자체를 전환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확장된 생산성’ 혹은 ‘지속 가능한 생산성’이라는 개념이다. 확장된 생산성은 단순한 물적 산출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 환경 부담, 사회적 안정성, 기술 축적 효과를 함께 고려한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투자는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 감소, 온실가스 감축, 산업 생태계 형성이라는 복합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기존 GDP 중심의 성장 지표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지만,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생산성은 이제 ‘얼마나 싸게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게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국가의 역할 변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전통적 자유시장 경제에서 국가는 시장 실패가 발생했을 때만 개입하는 조정자였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국면에서 국가는 더 이상 수동적인 조정자가 아니라, 시장의 방향을 설계하는 적극적 행위자가 된다.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재생에너지 보조금, 녹색금융 정책 등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에 장기적 신호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는 민간이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특히 최근의 산업정책은 과거 보호무역 적 성격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과거의 산업정책이 국내 산업 보호와 시장 차단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의 산업정책은 기술 표준과 생태계 선점을 목표로 한다. 반도체, 배터리, 수소, 전력망, 탄소 포집 기술에 대한 국가 주도의 투자는 단순한 보조금 정책이 아니라, 미래 시장의 규칙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개입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은 혁신을 수행하는 새로운 역할 분담 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과 사회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전환은 기존 산업의 축소와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동시에 동반하기 때문에, 노동 이동과 재교육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생산성은 더 이상 노동 투입 대비 산출량이 아니라, 노동자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환 과정에 적응할 수 있는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재교육 시스템, 사회 안전망, 전환기 고용 정책은 더 이상 복지 정책이 아니라 경제 성장 정책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개념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팬데믹, 기후 재난, 전쟁, 공급망 붕괴는 효율성 중심 경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었다. 비용을 최소화한 글로벌 분업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붕괴했고, 이는 각국이 에너지와 핵심 산업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생산성이란 최소 비용 구조가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안전장치이자 성장 전략이다. 에너지 자립도는 곧 국가 안보이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 또한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술 집약적이고 고용 유발 효과가 커 장기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을 정당화한다. 결국 전환기의 경제학이 요구하는 것은 성장의 포기가 아니라 성장의 재정의다. 더 빠른 성장에서 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단기 이익에서 장기 안정성으로, 시장 중심 질서에서 국가와 시장이 공동으로 설계하는 질서로 이동하는 과정이 지금 진행 중이다. 이 변화의 성패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제도 설계 능력, 정책 일관성, 사회적 합의 형성 능력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 이후의 경제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그리고 이 전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국가는 위기를 성장의 계기로 만들 수도, 반대로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산업 변화가 아니라, 경제학 자체가 다시 쓰이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러한 전환의 성패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얼마나 일관된 정책 의지와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은 경제의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 아니라, 미래의 붕괴를 막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다. 결국 새로운 경제 질서는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전환기의 경제는 ‘속도’가 아닌 ‘설계’의 문제다
전환기의 경제는 성장의 종말이 아니다.
다만 성장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이제 생산성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에서 결정되고,
성장은 양이 아니라 질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의 경제 경쟁력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인가”에 달려 있다.
이 글은 경제 구조와 사회 변화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보다 넓은 맥락의 글은 블로그 내 다른 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플랫폼 자본주의의 진화: 노동·데이터·권력이 재편되는 경제 구조 (0) | 2026.01.29 |
|---|---|
| 전환 이후의 경제 질서: 국가·시장·기술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2 (0) | 2026.01.28 |
| 에너지 전환과 국가의 역할: 시장을 넘어선 경제 질서의 재구성 (0) | 2026.01.19 |
| 기본소득은 가능한가: 경제학적 쟁점과 사회적 함의 (0) | 2026.01.19 |
| 성장의 한계 이후의 경제학: 더 많이가 아닌, 다르게 성장하는 사회 (0) | 2026.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