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한계 이후의 경제학: 더 많이가 아닌, 다르게 성장하는 사회
오랫동안 경제학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존재해 왔다. “어떻게 더 많이 성장할 것인가?” 국내총생산(GDP)은 국가의 성과를 측정하는 절대적 지표였고, 성장률은 정치적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이 질문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성장률이 높아져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고,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불안정성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전통 경제학은 성장을 생산 요소의 확대, 즉 노동·자본·기술의 결합으로 설명해왔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에는 유효했다. 더 많은 노동력, 더 많은 공장, 더 많은 자본 투입은 실제로 더 많은 생산과 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은 증가했지만, 고용은 늘지 않았고, 성장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이는 성장과 복지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음을 의미한다.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 경제에서 성장이 점점 ‘질’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장기적 가치보다 단기 실적에 집중하고, 국가는 지속 가능성보다 수치상의 성장을 우선시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은 파괴되고, 노동은 소모되며, 사회적 신뢰는 약화된다. 성장은 지속되지만, 사회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이는 성장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방식이 시대에 맞지 않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경제학적으로 이는 ‘한계효용의 체감’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소비는 더 이상 행복이나 만족을 크게 증가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계속해서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요구한다. 이는 개인에게 과잉 경쟁을 강요하고, 기업에게는 무한 확장을, 국가에는 끝없는 성과 압박을 부여한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하지만, 개인은 점점 더 불안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탈성장(degrowth) 또는 질적 성장이다. 이는 성장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성장의 목표를 재정의하자는 문제 제기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분배하고, 더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며, 더 안정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의 목적을 ‘확대’가 아니라 ‘유지와 균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GDP는 더 이상 사회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 환경 파괴, 의료비 증가, 재난 복구 비용조차 GDP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삶의 질, 건강, 교육, 환경, 사회적 신뢰를 포함하는 대안적 지표들이 논의되고 있다. 행복지수, 인간개발지수(HDI), 지속가능발전지수(SDGs) 등이 그 예다. 이는 경제를 숫자가 아닌 삶의 조건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생산성’ 개념의 재해석이다. 기존 경제학에서 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산출량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이 개념이 한계에 봉착했다. 자동화와 AI가 생산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가치는 생산량이 아니라 창의성, 돌봄, 관계, 판단과 같은 비계량적 요소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필수 노동이 저평가되고, 금융·기술 분야가 과대평가되는 구조가 지속된다.이 문제는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회에 기여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인가? 만약 후자라면, 현재의 경제 구조는 인간의 목적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시장 가격으로만 환산될 때, 돌봄·교육·공공 서비스는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 기본서비스, 노동시간 단축 같은 정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성장 이후 사회를 대비하는 경제적 실험이다. 생산성이 충분히 높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과도한 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분배하고, 어떻게 시간을 재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경제학은 이제 효율성의 학문에서,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학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후 위기 역시 성장 중심 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결정적 요소다. 무한 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 시스템은 유한한 자원 위에서 지속될 수 없다. 환경 비용이 외부화된 채 유지된 성장은 결국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부채로 돌아온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제는 성장률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 회복 가능성, 순환성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더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가? 이 둘은 더 이상 동시에 달성되기 어렵다. 선택의 문제이며, 가치의 문제다. 경제는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성장의 한계 이후의 경제학은 비관이 아니라 전환의 학문이다. 그것은 포기의 논리가 아니라, 방향 전환의 논리다. 더 많이 갖는 사회가 아니라, 더 오래 유지되는 사회. 더 경쟁적인 사회가 아니라, 더 회복력 있는 사회. 경제는 이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삶의 조건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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