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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불확실성의 경제학: 위기 이후 사회는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가

by 밍두두 2026. 1. 16.

불확실성의 경제학: 위기 이후 사회는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가

회복탄력성 경제학이 위기 이후 시스템의 복원력과 적응 능력에 주목했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다뤄야 할 핵심 주제는 불확실성(un­certainty) 이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 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위기는 이 불확실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사건이다. 팬데믹, 금융위기, 지정학적 갈등, 기후위기와 같은 충격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위기 이후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회복이나 성장률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사회의 대응 방식과 구조적 전환 메커니즘을 분석해야 한다.

전통 경제학은 위험(risk)을 확률로 계산 가능한 변수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케인스가 지적했듯, 현실 경제의 대부분은 확률조차 알 수 없는 근본적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 계산이 아닌 기대, 심리, 신뢰에 기반해 행동하게 만든다. 위기 상황에서 공포가 전염되고 소비가 위축되며, 투자와 고용이 동시에 얼어붙는 현상은 단순한 수요 감소가 아니라 기대 구조의 붕괴로 이해해야 한다. 즉,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행동경제학과 제도경제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은 완전한 정보와 합리성을 전제로 움직이지 않으며, 오히려 손실 회피, 군집 행동, 확증 편향 같은 심리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위기 이후 사회에서 정부의 메시지, 중앙은행의 신호, 언론의 프레이밍이 경제 회복 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보이는 심리와 제도적 설계가 시장의 방향을 규정한다.

또한 위기는 기존의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을 재편한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이 시기에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비효율적인 기업과 산업은 퇴출되고, 디지털 전환, 플랫폼 경제, 비대면 서비스, 자동화 기술이 급속히 확산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자본 배분 구조의 이동을 의미한다. 자본은 안정적 산업에서 불확실하지만 성장 잠재력이 큰 영역으로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소득 분배 구조 역시 크게 흔들린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의 질적 변화다. 위기 이후 경제에서 일자리는 단순히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긱 이코노미, 원격 근무가 확산되면서 고용 안정성과 사회 안전망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화라는 위험을 내포한다. 회복탄력성 있는 경제란 단순히 빨리 회복하는 경제가 아니라, 불평등을 완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춘 경제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 역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 목표였다면, 위기 이후에는 고용, 성장, 금융 안정, 사회적 회복력이 동시에 고려된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은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구조적 개입이다. 이는 국가의 역할이 다시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신자유주의적 최소 국가 모델에서 조정자 국가, 보호자 국가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위기 이후의 질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경제 회복이 기업의 이익과 자산 시장의 반등에만 집중된다면, 사회적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신뢰 없는 경제는 다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회복은 경제 성장 + 사회적 정당성이라는 이중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분배 정책이 아니라, 교육, 보건, 주거, 노동 시장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는 문제다.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는 균형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적응 시스템이다. 위기는 이 진화 속도를 강제로 가속화한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규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혼란은 필연적이지만, 동시에 혁신의 창이 열린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무작위적 붕괴로 끝나느냐, 아니면 의도된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느냐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정책 설계, 사회적 합의, 그리고 가치 선택이다.

결국 위기 이후의 경제는 단순히 ‘회복된 경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가 된다. 더 디지털화되고, 더 연결되며, 동시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시대의 경제학은 성장률이나 효율성만이 아니라, 적응력, 포용성, 안정성을 함께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필요로 한다. 회복탄력성 이후의 과제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질서의 재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정치, 그리고 인간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불확실성의 경제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고전적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위기 상황에서는 정보의 정확성보다 정보의 속도와 감정적 파급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소셜미디어, 실시간 뉴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자기강화적 루프를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감정이 유통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불확실성은 더 이상 외생적 충격이 아니라, 미디어 구조와 기술 시스템을 통해 증식되는 내생적 변수가 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 시장은 불확실성의 가장 민감한 증폭 장치로 기능한다. 주식, 채권, 환율, 부동산 시장은 실물 경제보다 먼저 반응하며, 기대의 변화를 가격에 반영한다. 그러나 이 가격 신호는 종종 실물 기반이 아닌 집단 심리와 투기적 기대에 의해 왜곡된다. 위기 이후 자산 가격이 실물 경제 회복보다 빠르게 반등하는 현상은, 시장이 미래의 생산성을 평가한다기보다 유동성과 심리 안정 신호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자산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불확실성이 곧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통로로 작동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