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 이후의 경제 질서: 국가·시장·기술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이 바뀌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 구조, 국가의 역할, 시장의 작동 방식 자체가 재편되는 문명적 전환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고성장 체제가 한계에 도달하면서, 경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성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방식의 성장이 지속 가능한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1. 성장 패러다임의 붕괴와 재구성
20세기 경제성장은 명확한 공식 위에서 작동했다.
값싼 에너지 → 대량생산 → 소비 확대 → 고용 증가 → 성장률 상승.
하지만 이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에너지 가격은 불안정해졌고, 환경 비용은 외부효과가 아닌 실질적 비용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까지 겹치며, 전통적 성장 모델은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했다.
특히 선진국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생산성은 정체되고, 노동 인구는 감소하며, 부채 의존도는 높아진다. 이 상황에서 단순한 경기 부양이나 통화 완화는 더 이상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이제 성장은 양적 팽창이 아니라 질적 전환의 문제로 이동했다.
2. 국가의 역할은 왜 다시 중요해졌는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하에서 국가는 오랫동안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기후 위기, 공급망 붕괴 같은 복합 위기는 이 전제를 무너뜨렸다.
에너지 인프라는 민간 시장만으로 구축되기 어렵다.
장기 투자, 불확실성, 초기 수익성 부족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의 경제학에서는 국가를 다시 **‘조정자(coordinator)’이자 ‘위험 분담자’**로 바라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음과 같다.
재생에너지 보조금 및 인프라 투자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대한 국가 주도 전략
탄소세 및 배출권 거래제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노동 보호 정책
이는 단순한 개입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역할에 가깝다. 다시 말해 국가는 시장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장의 방향을 설정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3. 기술 발전과 생산성의 새로운 정의
과거 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생산량’으로 측정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이후 이 개념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자동화, 인공지능, 플랫폼 경제의 등장으로 인해 생산성은 더 이상 노동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그 성과가 사회 전체로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업, 기술 독점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 반면, 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과 소득 정체를 경험한다. 이로 인해 **‘생산성은 증가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은 다시 질문하게 된다.
생산성 향상이 곧 사회적 후생의 증가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이론 문제가 아니라, 향후 복지 정책·조세 정책·노동 정책 전반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4. 시장의 재편: 효율에서 회복력으로
기존 시장 논리는 ‘효율성 극대화’였다.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구조가 정답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이 논리를 뒤흔들었다. 효율만을 추구한 공급망은 위기 앞에서 극도로 취약했다. 이로 인해 경제학에서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한다.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 이다.
회복탄력성 경제란 다음을 의미한다.
단기 효율보다 안정성 중시
분산된 공급망
일정 수준의 비용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위기에 견디는 구조
국가 간 의존도 완화
이는 단기적으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스템 붕괴를 막는 보험과 같다.
5. 앞으로의 성장: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
이제 성장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보다,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느냐가 중요해졌다.
탄소를 줄이지 않는 성장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장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제는 다음과 같은 기준 위에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 탄소 중립을 고려한 성장
✔ 기술 발전의 사회적 환원
✔ 국가의 전략적 개입
✔ 장기 안정성을 중시하는 정책
✔ 생산성과 복지의 균형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미 ‘에너지 이후 시대의 경제’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맺음말: 전환기의 경제를 읽는다는 것
경제는 언제나 변화해 왔지만, 지금과 같은 전환기는 드물다.
에너지, 기술, 인구, 기후, 지정학이 동시에 움직이는 시대 속에서, 경제학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다.
이제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석하는 능력이며
✔ 개인의 선택을 전략적으로 만드는 도구이며
✔ 사회 전체의 방향을 읽는 통찰이다.
6. 전환기의 경제에서 개인과 사회가 마주한 과제
전환기의 경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불확실성이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경기 침체나 금융 위기가 비정기적으로 발생했다면, 오늘날의 경제는 위기가 상시화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에너지 가격 변동, 지정학적 갈등, 기후 리스크, 기술 패권 경쟁은 서로 맞물리며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충격을 준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단기적인 경기 예측이나 단순한 투자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개인과 기업 모두 리스크를 전제로 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고정 수입에만 의존하는 구조보다는 복수의 소득원, 기술 학습을 통한 노동 가치 유지, 그리고 장기적 관점의 자산 배분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성장률 수치만을 목표로 정책을 설계하는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국가는 성장률뿐 아니라 고용의 질, 산업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경제정책이 더 이상 재무적 계산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전환기의 경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성장은 계속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성장이 우리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이다.
무한한 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 모델은 이미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자원은 유한하고, 환경은 회복 속도에 한계가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경제는 더 이상 숫자의 게임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의 결과물이 된다.
전환기의 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과거의 성장 공식을 반복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에너지 이후의 시대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 체계가 재구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지금 우리는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에너지, 기술, 시장, 국가의 역할이 동시에 재편되는 이 시기에는 단편적인 정보보다 구조를 읽는 시선이 중요하다.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의 흐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지를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전환기 속에서 개인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경제적 사고방식을 더 깊이 다뤄볼 예정이다.